병자호란 원인, 교훈 알아보기

Posted by 슈퍼너드 리보
2021. 2. 1. 17:03 취미&덕질/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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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원인 남한산성 보셨나요? 거기서 병자호란에 대해 고증 잘해서 보였주었었는데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 중 하나가 아니였을까요? 조선의 임금 인조가 삼전도의 오랑캐 왕에게 삼두고배 그러니까 땅바닥에 머리찧기를 하며 굴욕적인 강화를 맺었잖아요. 정말이지 화가나는 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째서 인조는 자신이 오랑캐라 멸시하던 청나라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병자호란 원인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병자호란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선 당시 상황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선의 사대부들은 재조지은이라 하여 조선의 땅에서 왜군을 몰아내게 해준 명나라에게 큰 은혜를 갖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임진왜란 당시 도망이나 치던 사대부들에게 체면과 나라의 기강 때문에 예를 강조하여 명나라의 사대관계가 과거 실리를 챙기던것과는 달리 절대적인 충성적인 종속 관계로 바뀌게 된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명나라는 임진왜란과 각종 외세의 침입으로 인해 점점 동북아의 패권을 잃게 되고, 누르하치의 만주가 동북아 패권을 잡게 된겁니다. 그래서 조선은 막 명나라에게 충성을 해야되냐? 만주에게 충성을 해야되냐가 된것이죠. 조선의 임금은 인조였습니다. 만주와 명나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광해군을 축출하고 자신이 왕좌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인조는 집권 과정에서 북방의 영토를 지키던 조선의 초정예 장수와 병사들을 죽이게 되고 조선에 큰 전력공백을 가져오게됩니다. 만주는 명나라와 전쟁을 하며 국호를 후금으로 바꿨었는데요. 후금은 그틈을 노려 조선을 침략하고, 조선은 오랑캐라고 여기던 후금과 형제의 나라가 됩니다. 그래도 만주는 조선이 명나라와의 군신관계를 지키는것을 허락할 정도로 융통성있게 화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이 정묘호란인데요. 병자호란은 그로부터 10년 뒤의 일입니다.

10년간의 평화는 병자호란의 시작으로 끝이 나는데요. 발단은 이렇습니다. 명나라 다음 가는 문명 국가라 자부하는 조선의 신하들의 오만한 세계관에서 비롯됩니다. 인조의 어머니인 인헌왕후의 죽음으로 청에서 사절단을 보냅니다. 하지만 청의 사절단은 명나라 사절단에 비해 초라한 식사 대접과 허름한 숙소에 머물게 하며 굴욕감을 느낄 정도의 엄청난 외교적 실례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의 즉위식에 보낸 조선의 사신들이 오랑캐의 왕에겐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며 고개를 뻣뻣이 쳐드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두가지 사건으로 인해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는 파국에 빠지게 되고,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된것입니다. 이로 인해 차차 안정을 찾아가던 조선은 다시 한번 전쟁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결국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나라의 황제 홍타이지에게 삼두고배를 하며 명나라와의 관계를 끊고, 청나라와 군신관계를 맺게 됩니다. 또한 청나라를 비방한 모든 문서를 불태우며 조선의 백성들을 청으로 명나라와의 전쟁을 위해 보내게 됩니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몇십년간 멸시받던 중국이 약진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있으면 2020년 정도만되도 미국의 경제력을 앞지른다는 말도 있고요. 그렇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중국 하면 아직은 멀었다라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그러나 김대식 교수가 말했듯 과거 통일 전 독일 소국들의 불량스런 상품들을 골라내기 위해 made in Germany라고 붙여놓았던 독일이 현재는 최고의 브랜드 아디다스, BMW, 퓨마의 나라가 된거같이 (마치 made in china로 중국제는 싸구려라 생각하는것처럼) 중국이 독일처럼 선진국이 되는 날이 얼마간 오지 않을까요? 그러한 시기 한국은 시대적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기존의 외교관계도 어느정도 재정리 해야 할 것입니다. 병자호란에서 겪은 굴욕적이고 무엇보다 백성들의 고초를 되풀이 하지 않을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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