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때 신성시 되던 까마귀가 흉조가 된 이유

Posted by 슈퍼너드 리보
2021. 2. 4. 21:01 취미&덕질/역사
반응형

 

까마귀가 흉조가 된 이유

 

고조선 때에도 삼족오(이건 그냥 세발 달린 가상의 검은 새를 삼족오라고 칭한 거라는 설도 있고. 아직도 논란이 많음)를 숭상했다고 나옴..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까마귀는 길조와 동시에 신령한 새였음. 태양과 가까이 있어서 태양을 상징하는 새이기도 함. 이게 고구려때, 삼족오를 숭상하면서 두드러졌는데 고구려 당시, 수.당나라는 고구려에 당한 게 많다 보니 삼족오를 무지 싫어했다고 함.

 

 

 

고구려 국기에 삼족오를 넣었고. 고구려 깃발에는 삼족오를 그려넣고, 그 아래에 글씨를 새겨넣는데, 수. 당 시절 항상 고구려에 짐.. 멀리서 고구려 깃발을 보는데, 그 아래 글씨 같은 거 안 보이고, 삼족오 그림만 보이니까, 고구려군이 왔구나 하고 짐작함. 또 까마귀는 잡식성인데 가끔 동물 시체도 먹음. 전쟁 중에 시체가 많은데,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을 이 까마귀가 먹었다고 함.. 그래서 멀리서 삼족오 그림만 보여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싫어했는데(고구려랑 전쟁할 때마다 졌고, 자기들이 죽을 걸 아니까) 이 까마귀는 색깔도 검고, 까악 까악 대는 울음 소리가 듣기 좋은 소리도 아니고, 시체까지 먹으니 그게 얼마나 공포스러웠겠음.

 

 

 

 

 

까마귀가 울면 사람이 죽는다. 까마귀가 울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

 

까마귀는 머리가 좋은 새. 까마귀가 울면 사람이 죽는 게 아니고, 사람이 죽어서 그걸 알리려고 우는 건데, 까악 까악 하고 울어대는 소리가 정말 음산하고 괴기스러움.

 

까마귀는 안 좋은 일을 가장 먼저 알려서 피하라고 울어대는 건데, 수. 당 시절 고구려 국조가 까마귀인데다 실제 검은 까마귀들이 시체를 파먹으면서, 까악 까악 하고 울어대는 모습이 얼마나 음산하고 괴기스럽게 보였겠음.. 사실 까마귀는 잡식성이라 아무거나 먹은 건데.. 그래서 수.당 시절에 까치는 길조, 까마귀는 흉조라는 인식이 생김.

 

고구려가 멸망한 후, 신라에서 중국의 풍습을 받아들이는데, 까마귀를 싫어했던 수. 당 시절의 풍습까지 같이 받아들임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농가에선 까마귀의 잡식성 때문에 여름엔 흉조, 겨울엔 길조로 나뉨.

 

여름에 까마귀들이 농작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서 농민들의 골칫덩이였다고 함. 수확하기도 전에 먹어치우니 반길 수가 없지. 그래서 여름엔 흉조.

 

그런데 겨울엔 해충을 잡아먹어주니까 농민들의 수고를 덜어준다 해서 겨울에 까마귀 오는 것은 농민들이 반겼다고 함. 그래서 겨울엔 길조.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까마귀는 길조였음. 양반들은 사대한다고(수, 당 시절의 풍습으로 인해 중국인들은 까마귀 안 좋아함) 까마귀를 좋아하진 못 했음(그렇다고 까마귀를 완전히 싫어하진 않음).

 

그러던 것이 청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까마귀를 안 좋은 것으로 인식하는 게 생김(까마귀는 청나라의 국조임).

 

당시 청나라를 엄청 싫어했었는데, 청나라의 국조인 까마귀가 좋게 보일 리가 없음.

 

 

 

 

 

동양에서 용은 왕의 상징이고, 신령한 동물이지만 서양에서 용은 안 좋은 동물이듯이 까마귀도 일본, 한국에선 길조였지만 유럽에선 까마귀 완전 싫어했음(서양도 각 나라마다 싫어하는 나라가 있고, 좋아하는 나라가 있는데 유럽에선 까마귀 싫어함)

 

드라마에선 안 나왔지만 이성계가 즐겨하던 것이 까마귀 사냥. 갓 장식에 많이 쓰인 것도 까마귀 깃털임.

 

갓 장식에 쓰이는 새 깃털들은 각각 좋아하는 새들이 많은데 그 중에 까마귀 깃털도 들어감.

 

진짜 흉조였고, 싫어하는 새였음 갓 장식으로 까마귀 깃털을 쓸 리가 없지..

 

 

 

 

 

길조였다가 흉조였다가, 계속 변하는데 일제 강점기 시절에 급격한 개화를 겪으면서, 수.당 시절에 굳어진 흉조로 여기는 습성과 청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청나라가 싫으니 청나라의 국조인 까마귀도 싫다는 그런 반감,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흉조로 굳어짐.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도 우리가 놓지 않았던 게 까마귀를 좋아하던 문화였는데(역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까마귀 좋아한 문화가 오래되었음), 이게 역사와도 연결되는 것이라 어떻게든 민족성을 없애야 하는 일제 입장에서 전혀 좋은 일이 아님. 그래서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에 의해, 니들은 원래부터 까마귀 싫어했다고 가르쳤는데 그게 굳어져 현대로 넘어오면서 그냥 정착했다는 카더라가 있음.. 역사를 돌아보면 일본과 한국에서 까마귀는 둘 다 길조였음.

 

 

 

 

 

 

 

 

 

아래는 ㄴㅇㅂ검색.

 

 

 

 

 

 

 

한자어로 오(烏)·효조(孝鳥)·오아(烏鴉)라고도 한다. 몸길이 50cm, 날개길이 32∼38cm이다. 수컷의 겨울깃은 온몸이 검고 보랏빛 광택이 난다. 이마의 깃털은 비늘모양이며 목과 가슴의 깃털은 버들잎 모양이다. 여름깃은 봄에 털갈이를 하지 않기 때문에 광택을 잃고 갈색을 띤다. 암컷의 빛깔은 수컷과 같으나 크기는 약간 작다. 부리도 검은색이며 부리 가운데까지 부리털이 나 있다. 한국의 전역에 걸쳐 번식하는 흔한 텃새다.

 

평지에서 깊은 산에 이르기까지 도처의 숲에서 번식한다. 번식기에는 1∼2쌍씩 작은 무리를 지어 지내고 번식을 끝낸 뒤에는 큰 무리를 지어 남쪽으로 내려가 겨울을 난다. 디스플레이 행동을 할 때는 날개를 늘어뜨리고 꼬리를 편 채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울어댄다. 높은 나뭇가지 위에 마른가지를 모아 지름 약 30cm의 둥지를 튼다.

 

 

 

알을 낳는 시기는 3월 하순∼6월 하순이고, 1년에 한 차례 한배에 4∼5개의 알을 낳는다. 암컷이 알을 품는 동안 수컷은 암컷에게 먹이를 날라다 먹인다. 알을 품는 기간은 19~20일이고 새끼는 부화한 지 30∼35일이면 둥지를 떠난다. 어린새는 둥지를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어미새와 함께 지낸다. 먹이로는 들쥐·파리·벌·딱정벌레·갑각류 따위를 비롯하여 다른 새의 알이나 새끼도 잡아먹고 곡류나 열매도 먹는 잡식성이지만, 번식기에는 주로 동물성 먹이를 많이 먹는다. 번식기인 2∼3월에 둥지를 틀기 시작하고 옛 둥지를 다시 수리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둥지는 점점 커진다. 번식이 끝나면 제각기 무리를 지어 휴식처와 텃세권을 정하고 아침 저녁으로 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까마귀의 집단은 리더가 없는 단순한 집합체인데, 이 때문에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는 말이 생겼다. 또 까마귀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지만 영리해서 피해를 막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일본·사할린섬·쿠릴열도·중국·몽골·아무르·우수리·이란(북동부)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민속

 

한국에서는 까마귀가 예언을 한다고 믿고 있는데, 《삼국유사》의 〈사금갑조(射琴匣條)〉에 이르기를, 488년(신라 소지왕 10)에 까마귀가 왕을 인도하여 궁주(宮主)와 내전에서 향을 사르는 중이 간통하고 있는 것을 찾아내 처단하였다. 이로부터 ‘까마귀날’과 ‘까마귀밥’의 관습이 생겼으며 정월 대보름 행사는 까마귀가 궁중의 변괴를 예고한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또 삼족오(三足烏;세 발 달린 까마귀)라고 해서 태양의 정기가 뭉쳐서 생긴 신비한 새로도 알려졌다. 〈연오랑세오녀설화(延烏郞細烏女說話)〉도 태양신화라 할 수 있는데, 주인공 이름에 까마귀 오(烏)자가 들어 있다. 제주도 신화 ‘차사본풀이’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인간의 수명을 적은 적패지(赤牌旨)를 강림이 까마귀를 시켜 인간 세계에 전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마을에 이르러 이것을 잃어버린 까마귀가 자기 멋대로 외쳐댔기 때문에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의 죽는 순서가 뒤바뀌어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죽어갔다. 이 때부터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검은 까마귀는 불길한 새로 여기지만, 붉은색이나 금색으로 그린 까마귀는 태양과 효도를 뜻한다.

 

 

 

한 해의 운세를 보는 데 까마귀를 사용한 예도 있다. 아랍인은 까마귀를 ‘예언의 아버지’라 부르며 오른쪽으로 나는 것을 길조(吉鳥), 왼쪽으로 나는 것을 흉조(凶鳥)로 믿었다. 유럽에서도 까마귀는 일반적으로 불길한 새로 여겨지고 있으나, 북유럽 신화에서는 최고신 오딘의 상징으로 지혜와 기억을 상징한다. 반면에 그리스도교에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저지르게 하는 악마의 새이다. 북태평양 지역에서는 까마귀가 신화적 존재로 여겨졌다. 시베리아의 투크치족·코랴크족과 북아메리카의 북서 태평양 연안 아메리카인디언들 사이에서는, 까마귀는 창세신(創世神)이 변한 모습이라 하여 창세신화의 주역으로 삼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