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센델 정의 특강 1

Posted by 슈퍼너드 리보
2021. 4. 2. 16:05 취미&덕질/정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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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덜 - 1강

 

이것은 ‘정의’라는 것에 대한 수업입니다. 이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전차의 운전사라고 가정해봅시다. 당신이 시속 60마일로 전차를 몰고 있는데, 갑자기 길 저 끝에서 5명의 인부들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차를 멈추려고 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브레이크는 고장났습니다. 그대로 돌진한다면 그 인부들은 모두 죽게 될 것이라는 걸 알기에, 당신은 매우 절박한 상태입니다. 그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합시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달리고 있는데, 당신은 샛길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샛길에서는 한 명의 인부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차의 조종장치는 작동하고 있어서, 당신이 원한다면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1명을 희생하고 5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무엇이 옳은 행동입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견을 한번 들어보죠. 차를 샛길로 돌리겠다는 분, 손 들어보세요. 방향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직진하겠다는 분? 직진하겠다는 분은 계속 손 들고 계세요.

 

손가락에 꼽을 만큼의 사람들은 직진하겠다고 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향을 바꾸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번엔 왜 돌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들어보도록 하죠. 다수의 의견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샛길을 선택하신 분? 왜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했습니까? 이유가 뭘까요? 누가 말해볼까요?

 

학생1: 왜냐하면 한 명을 희생하는 걸로 끝날 수도 있는데 5명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1명만 죽일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는건 옳지 않다. 음··· 그것도 타당한 이유죠. 좋은 이유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다들 이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이유요? 말해보세요.

 

학생2: 저는 이것이 9.11 테러때와 같은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당시 비행기를 펜실베니아 숲으로 조종한 사람들을 영웅이라 칭송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비행기 승객들을 희생시켜 큰 건물들 안에 있던 사람들을 더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보충설명: 9.11 테러를 위해 동원된 총 네대의 민간 항공기 중 두대는 무역센터빌딩에 충돌했으며 한대는 펜타곤에 부딪혔다. 하지만 한대는 펜실베니아의 인적 없는 숲에 떨어졌다)

 

9.11테러때도 같은 논리가 작용했지요. 비극적이긴 합니다만은. 다수를 살릴 수 있다면 소수가 희생하는 것이 낫다. 이것이 대부분이 방향을 바꾸겠다고 대답한 이유입니까? 그런가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소수의 의견을 들어보죠. 방향을 바꾸지 않겠다고 대답한 사람?

 

학생3: 제 생각에는 그런 사고방식은 대량 학살이나 전체주의를 정당하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다 쓸어버리는 것 말입니다.

 

그렇다면 학생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겁니까? 대량학살이 걱정되기 때문에 그대로 5명에게 돌진해서 그들을 죽게 만들겁니까?

 

학생3: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럴거라고요?

학생3: 네

알겠습니다. 또 다른 의견 있습니까? 굉장히 용기 있는 답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엔 다른 전차 상황에 대해 생각 해 봅시다. 이번에도 다수의 그룹에 있던 사람들이 5명을 살리기 위해서 한명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끝까지 고수할지 봅시다. 이번에는 운전사가 아니라 그냥 다리에 서서 그 상황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고 가정 해 봅시다. 당신은 다리 위에 서서 전차길을 보고 있고, 그 길을 따라 전차가 들어옵니다. 5명의 인부들이 트랙 끝 쪽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브레이크는 작동하지 않고, 전차는 그대로 그 인부들에게 돌진해 그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운전사는 아니지만 지금 대단히 절박한 상황에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다리에 기대 서 있는 굉장히 뚱뚱한 남자를 발견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을 다리 아래로 밀어버린다면, 그 남자는 다리에서 밀려나 전차 바로 앞에 떨어져서 전차를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그 남자는 죽겠지만 5명의 인부들은 살릴 수 있습니다.

 

자, 그 뚱뚱한 남자를 다리 아래로 밀겠다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들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당연히 제기될 의문점이 생깁니다. 첫번째 사례에서는 대부분이 동의했던, 5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1명을 희생할 수 있다는 원칙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제 이 두가지의 사례 모두에서 다수의 견해에 손을 든 사람들 중에서 이 두 사례의 차이를 설명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네.

 

두번째 사례에서는 어떤 한 사람을 밑으로 떨어지도록 하는 행동을 요구하는 선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밑으로 떨어질 수 도 있던 그 사람은 그 상황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빠져나갈 수도 있는 상황에 그를 개입시키기로 선택하는 것은 3개의 집단(전차가 지나가는 길에서 일하는 5명의 인부들, 운전자, 사이드 트랙에서 일하는 1명의 인부)이 모두 그 상황의 당사자인 첫번째 사례에 비해 더 자발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샛길에서 혼자 일하는 그 사람도 뚱뚱한 사람만큼이나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것을 선택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그는 길위에 있었고···

이 사람은 다리 위에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당신이 원하면 다시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네 좋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잘하셨습니다.

정말 잘하셨어요. 이 두 가지 경우에서 다수가 보여준 상반된 반응에 대해 조정하여 설명해 주실 다른 분 계십니까?

 

제 생각에는 1명의 인부와 5명의 인부가 있는 첫번째 사례는 그 두 그룹에서 하나를 고르는 양자택일의 문제이고,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지 결정을 하여 실행해야 합니다. 이 때 희생되는 사람들은 전차때문에 죽는 것이지, 당신의 직접적인 행위에 죽는 것이 아닙니다. 전차는 길 위를 달리고 있고, 당신은 몇초안에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반면에 뚱뚱한 사람을 미는 것은 당신이 사실상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당신은 남자를 다리 밑으로 미는 선택은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전차에 대해서는 한쪽을 희생을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두 사례가 약간은 다른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여기에 응수하고 싶은 분 계십니까? 아까의 답변은 좋았습니다. 이 답변에 응수하고 싶은 사랍 없나요? 이 문제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까요?

 

제 생각에 그것은 적당한 이유인 것 같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든, 당신은 누가 죽어야 할지 정해야 합니다. 당신이 차를 돌려 한 사람을 죽도록 하는 것도 의식적인 행동이고, 뚱뚱한 남자를 미는 것도 의식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그래서 어떤 경우든, 당신은 자의적으로 선택을 하는 겁니다.

 

이어 말하고 싶습니까?

 

저는 그게 이 상황에 적합한지 의문이 갑니다. 저는 두 상황이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사람을 길로 밀어서 그를 죽이는 행위는 사실상 당신이 살인을 저지른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손으로 민 것입니다.

 

당신이 그를 민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죽음을 초래할 어떤 것을 다른 무언가로 조정하는 것과는 다른··· 여기 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제가 맞게 말하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네요.

 

아닙니다, 잘 하고 있습니다. 좋아요. 이름이 뭔가요?

앤드류 입니다.

앤드류 내가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다리 위에 있는 그 뚱뚱한 남자 옆에 서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저는 그를 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는 오픈카 뚜껑 위에 서있고 저는 운전대를 이렇게 돌려서 그것을 열 수 있습니다. 당신은 차를 돌리시겠습니까?

 

몇몇의 이유 때문에 그것은 더 나쁜 것처럼 보이는 데요. 그렇죠? 제 말은 만약 당신이 실수로 운전대에 기대거나 아니면 차가 문을 떨어지게 할 전환을 했다면, 그땐 저도 그것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여전히 첫번째 사례에서 차를 돌리는 것 보다는 더 나쁘게 보인다는 것이죠?

네, 다른 말로 하면 첫번째 사례에서는 당신이 직접적으로 상황에 개입되어 있지만, 두번째 사례에서는 관찰자이기도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상황에 개입할지 안할지에 대한 선택권이 있습니다.

네, 이제 이 사례에 대해 잊어봅시다. 답변은 좋았습니다.

 

이번엔 다른 상황에 대해 상상해 봅시다. 이번엔 읍급실에 의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섯명의 환자가 옵니다. 그들은 심각한 전차의 전복으로 부상당했습니다. 희생자 중에서 5명의 환자들은 경상이고 한명의 환자는 심각하게 부상을 입었습니다. 당신이 심각한 부상을 입은 환자를 하루 종일 돌보지 않으면 그는 죽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를 하루 종일 돌본다면 나머지 다른 5명의 환자들이 죽습니다. 또는 당신은 5명의 환자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5명의 환자를 돌본다면 심각한 부상을 입은 환자는 죽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5명을 구할겁니까? 지금은 의사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1명의 구할 것입니까? 매우 적은 사람들이네요. 단지 몇 명되지 않는 사람들 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하나의 생명 5명의 생명?

 

이제 다른 의사의 사례를 생각해 봅시다. 이번에 당신은 이식수술을 담당하는 의사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5명의 절박한 환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식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한명은 심장이 필요하고 한명은 폐 한명은 신장 한명은 간 다섯번째 환자는 췌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장기기증자가 없습니다. 당신은 그들이 죽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문득 어떤 생각이 납니다. 옆방에는 건강한 남자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게 좋으세요? 그리고 그는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당신은 방안으로 아주 조용히 들어가서 그의 장기를 꺼낼 수 있습니다. 그는 죽겠지만, 당신을 5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할 겁니까? 아무도 없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할 겁니까? 만약 그렇게 할거라면 손을 드세요. 발코니에도 아무도 없나요? 당신이 할 겁니까? 몸을 너무 기울이지 않도록 하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까? 좋습니다. 뭐라고 말하실 겁니까? 발코니에 계신 건강한 남자의 장기를 꺼내시겠다는 분, 말씀해보세요. 왜 그렇게 할 겁니까?

 

사실 저는 살짝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모험을 해보고 싶은데요, 5명 중에서 가장 먼저 죽는 사람의 장기를 꺼내서 그의 건강한 장기를 다른 4명을 살리는데 쓰는 거죠.

 

좋은 생각이네요. 좋은 생각이에요. 당신이 이 사례에 있는 철학적 논점을 없애버렸다는 것만 빼면 말이지요. 다시 이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이 논쟁으로요. 이 논쟁이 어떤 식으로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는 지에 대해 몇가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몇가지 확실한 도덕원칙들은 우리가 가진 이 토론을 통해 이미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이 도덕원칙들이 어떻게 보이냐는 것입니다. 이 토의로 드러난 첫번째 도덕원칙은 무엇을 하는 것이 옳은가, 무엇이 도덕적인가는 당신의 행동으로 인해 일어날 결과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루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비록 1명이 죽어야 하더라도, 5명이 사는게 낫습니다. 이것은 결과주의자들의 도덕적 논리의 예입니다.

 

결과주의자들의 도덕적 논리에서는 도덕성은 행동의 결과에 있다고 봅니다. 규칙에서 벗어나서 결과는 당신이 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조금 더 나아가 다른 사례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시람들은 결과주의자들의 도덕적 논리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해습니다. 뚱뚱한 남자를 다리 너머로 밀거나 무고한 환자에게서 기관들을 꺼내 다른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것을 주저할 때, 사람들은 그 이유를 본질적으로 우수한 행위 그 자체에 대한 것에서 찾고자 하고, 결과는 그에 따라 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잘못되었다는 것만 생각합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절대적으로 잘못되었다고요. 심지어 그것이 5명의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고 해도요. 적어도 사람들은 우리가 논의한 이야기들의 두번째 버전에서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화면은 각 이야기의 두번째의 설명를 위한 의무론적 도덕 논리에 대한 것입니다. 의무론적 도덕적 논리에서는 도덕성은 특정한 의무와 권리에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의 중점은 의무론적 도덕성은 결과에 상관없이 확실한 의무와 권리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탐구해 볼 것입니다. 결과주의과 의무론 도덕덕인 근거의 상반되는 점을요. 가장 영향력있는 결과론의 도덕근거의 예는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이념인 실용주의입니다. 의무론의 도덕근거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는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른 두 이념의 도덕적 근거를 보고 그에 접근하고 또한 다른 것들도 고려해볼 것입니다.

 

이 강의계획서를 보면 우리는 유명한 뛰어난 여러 책들이 읽게 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존 로크, 임마누엘 칸트, 존 스튜어트 밀 그리고 다른 철학자들 에 의해 쓰여진 책들입니다.

이 강의계획서를 보았으면 우리는 이 책들만을 읽는 것뿐만이 아니라 현시대의 논란적인이고 예민한 사안들에 대해서도 알아볼 것이라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행동들의 특성과 평등에 대해 논쟁할 것입니다. 이 활동으로부터 언론의 자유, 동성결혼, 징병제 이런 실제적인 질문들을 결합하여 왜 우리의 삶이 이 추상적이고 이질적인 책들과 떨어질 수 없는지 확실히 할 것입니다. 왜 철학은 우리 삶 심지어 정치에 대한 생각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지도요. 그래서 우리는 이 책들을 읽고 우리는 우리는 이 사안들에 대해 논쟁하고 각각이 어떻게 하나의 사상이 다른 사상과 대립되는 지를 알아볼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충분히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저는 여기있는 모두에게 경고합니다. 그 경고는 이 책들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지식을 실행함으로써 확실한 어떤 위험에 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위험은 개인적이면서도 정치적입니다. 이 위험들은 철학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고 사실에서 부터 비롯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불안하게 합니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직면하게 함으로써 말입니다. 거기에 철학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이 강의의 어려운 점은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많은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친숙한 질문들을 풀음으로서 작용합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어떻게 작용하는 가에 대한 예입니다.

우리가 시작 할 때 다루었던 문제들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이 추장적인 책들을 어떻게 대할지도 보여줍니다. 철학은 우리에게 친숙해서 이상합니다. 새로운 정보를 제공함으로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칩니다. 새로운 관점을 공격하고 불러 일으킵니다. 그러나 여기 위험이 있습니다. 일단 친숙함이 이상함으로 돌아서면 이것은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자기이해는 순수함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한번 당신이 불안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면 당신은 다시는 무지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이 입문을 어렵게 할까요. 또한 논박합니다.

 

이 비현실적인 철학은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당신은 이 이야기가 어디에 근거하는지는 모르지만 당신은 이것이 당신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개인적인 위험입니다. 이제 정치적인 위험에 대해 말하자면 이 강의를 소개하는 한 방법은 당신에게 약속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약속은 책을 읽음으로서 그리고 논쟁함으로써 당신이 좀 더 책임감있는 시민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공공정책에 대해 조사하고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가질 것입니다. 당신은 좀 더 공공의 사안에 대해 참여하고 관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분적이고 잘못된 약속입니다. 정치철학은 대부분의 부분이 이런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가능성을 최대한 허용해야 합니다. 그 정치철학은 아마도 당신을 최악의 시민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후자가 더 낫습니다. 적어도 최악의 시민은 더 낫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은 심지어 분명한 것일지라고 평가하는 학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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